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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부 | 2017.06.27

    [기고]


    주여! 용서하소서.
    나는 죽음에 쫓기고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앓던 병이 조금씩 나의 육신를 괴롭혔고 나의 생명이 그리 길게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병약한데다 선천적으로 예민했던 나는 날이 갈수록 더욱 날카로워졌습니다.

     

    시간이란 형벌을 방어 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글을 쓰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창작은 내가 견디는 이유면서 고통의 근원이기도 했습니다. 그 때 그녀가 나타났습니다. 나는 작가다운 관찰력으로 그녀의 우울함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습니다. 남편을 따라 시골에서 이사 온 그녀는 외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조용하고 따뜻할 것 같은 그녀의 성품을 눈 여겨 본 나는 그녀를 나의 집에서 일해 줄 것을 제안 했습니다. 나는 매일 오후 4시면 일과를 시작해 다음 날 아침까지 작업을 했습니다.

     

     그 때 나는 외출하는 것도 사람을 만나는 것도 오직 사건에 대한 자료를 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나의 곁에서 말없이 나를 보살피는 것, 그 것이 그녀의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까다로운 나의 식성에 맞춰 음식을 요리했고 병이 악화되지 않도록 시간에 맞춰 약을 줬습니다. 그리고 오후엔 커피 한 잔을 갖다 주는 일도 잊지 않았습니다.

     

     내가 깊은 정적에 홀로 글을 쓸 때면 말없이 나를 바라 보았고 가끔 내가 키보드 치는 것이 힘들어 보이면 내가 불러주는 글을 대신 입력해 주기도 했습니다. 또 나의 자료를 적은 메모를 정리하고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오가는 일도 그녀의 몫이었습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그녀에게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나의 내밀한 얘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후회가 밀려오는 젊은 날의 치기 어린 행동에 대한 반성도 그녀에게는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그녀에게 나에 대한 생각을 묻기도 했습니다. 눈 빛만으로도 나의 모든 것을 짐작했던 그녀는 어느 새 나의 옆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당신에게 제일 먼저 말해 줄게 있어요. 이제 난 죽을 수 있어요. 작품을 완성하면서 나의 병은 악화되었고 지인들은 병원으로 옮길 것을 권했지만 나는 온 힘으로 거부했습니다.

     

     나는 그녀만 있으면 됩니다. 이것은 그녀에 대한 무한한 신뢰의 표현이었고 나의 사랑에 대한 마지막 고백이었습니다. 방안에는 가끔 연기가 깔려 있었고 소리가 스며들지 않도록 방음벽지를 발라 놓아 마치 선술집에라도 온듯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녀는 나의 제안으로 나의 집에 들어오던 날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영원한 밤 같은 밀폐된 공간에서 당신은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었어요. 시간을 지배하기 위해 나는 시간 밖으로의 이탈이 필수였고 작품 속의 목소리에 집중하기 위해 정적이 필요했습니다.

     

    이런 생활이 나를 얼마나 고통스럽게 만들지 알면서도 나는 고독과 정적을 선택했고 얼마 남지 않은 생을 기여히 작품에 바치고 있었습니다. 나의 이런 모습에 그녀는 삶과 죽음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고 나에 대한 안쓰러움과 존경심도 커져 갔습니다.

     

     그 때부터 오랜 기간 그녀는 어둡고 청결한 집에서 조용한 일상을 보내며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시간을 나와 함께 하였습니다. 그 고요한 공간에서 나와 담소를 나누는 일은 그녀에게 유일한 기쁨 이었습니다.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그녀였지만 나는 늘 작품의 세부적 사항을 의논했고 그녀에게 그것은 자신의 노동에 대한 그 어떤 대가 보다 값진 것이었습니다.

     

    그 후 시간은 이별을 강요했고 우리의 절규는 소용이 없었습니다. 신께서 밤에만 살아야 할 밤새에게 갑자기 대낮에만 살도록 가혹한  형벌을 내린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별이 왔을 때 티끌 같은 우리의 삶도 끝나버린 것입니다. 終.

     

    박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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